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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독서

말레이시아 이민전략을 통해 본 한인 사회 형성과 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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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준 저

서울대 인류학 학, 석, 박사

인류학 찐이시네ㅎ

연구를 하던 내용과 경험을 나열한 책

 

 


1장 

말레이시아 한인 이주의 역사와 한인 사회의 형성과 변화

 

전반적인 역사 설명에 나오는

중간중간 시대 상황과 구체적 지명,

인터뷰 내용이

현재와 연관지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

 

1940년 일제 강점기 말레이시아 강제 이주

1940 ~ 1960 역사 자료 없어

1960년 이주 역사 시작

1966년 WHO 의사 44명 파견 시작

1970년 베트남 전 이후 경남, 현대 건설 진출

1980년 본격적 건설업체 진출

페낭, 조호 건설 지역 주변 한인거주

1983년 마하티르 총리 동방정책으로

한국 기술연수생 파견 빈번해지고

경제교류 활성화 됨

1990년 대기업 투자 활발

사무실 KL 입주로 주재원 중심 한인타운 형성

암팡

광산개발지역으로

교통편리, 해외공관, 대사관 밀집 지역

일본인 타운이 이미 형성된 곳

"전 세계적으로 일본 사람들이 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주해 이사 가면

거기에 한국 사람들이 채운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이 미리 인프라를 구축해 놓기 때문이죠."

1997년 iMF이후 직장을 찾아

말레이시아로 한국인들 유입이 많아짐

암팡 한인타운 터줏대감 필마트

사장님도 IMF로 사업을 정리하고 들어옴

이전에도 노부부의 한인슈퍼가 있었으나

소규모였고 소비자 요구를 충족 못함

필마트는 대형 마트 유통 경험으로

대형 마트형태의 사업 시작

2000년 조기유학 열풍으로 한인들의 대량 유입과

2002년 월드컵으로

필마트는 월드컵 응원의 메카였고

현지 주민들의 항의도 있었지만

덕분에 명실상부 한인타운이라는 입지가 생김

 


2장

한류가 말레이시아 한인 사회와 한인 정체성의 형성과 변화에 미친 영향

 

한류에 대한 내용보다

말레이시아 정치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룸

 

문화적 다원주의의 말레이시아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타밀어

종교도 이슬람 도교 불교 힌두교 기독교가 있음

1957년 독립 후 인종 문제 기반 정당 정치

60년 이상 종족 중심주의적 정당 구성

하지만 종족집단의 정당은 동맹 파트너의 지원을 얻는 것을

조건으로 편을 가르는 문화가 있어

종족 집단 정당은 종족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기에

결국 2008년 3월 8일 12대 총선에서

BN의 비말레이 정당은 의석도 잃고

종족 공동체의 지지도 잃게 됨.

종족집단의 불만은 경제적 권리에 관한 것

1970년 시작된 신경제정책은

다수인 말레이인을 우대했고

소수집단의 분노를 삼.

새로 Pakatan Rakyat, PR은

모든 말레이시아인 종족간 평등을 약속했고

PR은 1970년 이후 222개 의석과 5개 주정부 중 83개 차지

 종족을 기반으로 둔 정치 종식 열망 

도시는 중국인 시골은 말레이인으로 구성

도시화가 진행되며 말레이인이 소외감 증가

1969년 인종 폭동을 정치적으로 이용

암노(UMNO) 주도로 말레이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신경제정책 등 차별적 정책 등을 실시함.

1971년 정부는 민족주의적 문화 확산을 위한 위원회 후원

이슬람 민족주의 문화 주 구성요소로 통합하려고 했고

사자춤 금지 등 타 문화 민감성을 간과한 정책들은

중국인등 비 주류 인종계의 반발을 삼

이에 1987년 정부는 Operasi Lalang를 실시

무차별 탄압과 이에 반하는 세력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항의자들은 소수인종 대표하는 BN 지지 철회

1990년대 초 암노 주도 동화정책 포기

중국인들 수용하는 통합정책 실시

말레이시아에서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타 종교에 대한 정부 예산 지원은 없음

마하티르 총리(1980~2003)는 이슬람화 프로그램 진행

1983년 이슬람 은행 설립, 국제 이슬람 대학 설립

1984년 이슬람 보험회사 Takaful 설립

정부 이슬람 가치 캠페인 진행

이러한 정체성 강화 활동은 사회적 문제를

민족간 종교간 민감성 캠페인으로 번지는 실마리를 제공함.

압둘라 바다위 이슬람의 가치를 보편화하려는

이슬람 하드하리(Hadhari) 시행

무슬림 비무슬림 모두에게 메시지 전달 실패

2018년 5월 9일 총선 야권 승리

독립 이후 61년만에 정권교체

그 선봉에 마하티르가 다시 총리 집권

80~90년대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철권통치라는 부정적 시선 존재

18년 총선 이슬람 정치 세력 역할 부상

빠스(PAS) 캐스팅 보트 역할 수행

급진 이슬람 세력인 아마나(Amanah) 빠스에서 분리 

정권교체의 의의

외환위기 이후 레포리마시 개혁운동과

공정한 선거개혁 버르시(Bersih)운동으로

민주주의 성장으로 바라볼 수 있음.

그러나 2020년 의회의 쿠테타로 불리는

대격변으로 희망연합 붕괴

2021년 야신 정부 몰라과 이스마일 사브리 총리 출범

포스트코로나 시대

기후위기, 불평등해소, 경제성장 등 과제 많음

 

마하티르 동방정책으로 양국간 교류 활발

1. 산업 기술 훈련

2. 말레이시아 정부 중견 관리 교육

3. 대학, 기술 교육

4. 교육, 연구 기관 유대강화

방송 문화컨텐츠 협정 체결

겨울연가 이후 민간으로 확장됨

스위트리 할랄푸드 한국식당의

문화홍보를 시작으로

한인회 KOTRA, KTO 후원

2010년부터 한국의 날 시행

1997년 말레이시아 자낌에서 할랄인증기관 설립

말레이시아 내 중국인 기업 및 글로벌 기업 등

비무슬림 자원을  통해 할랄 허브 구축

전세계 최대 할랄 수출국이 됨.

2011~2015년 한국을 방문한 말레이시아인 관광객 비율 급격히 증가

 


3장

말레이시아의 이주정책과 한인 정체성의 형성과 변화

 

Truly Asia 슬로건과 MM2H

말레이시아 아시아 다인종 국가

조기유학, 부동산 투자, 은퇴이민 유치 등

외국인 유치 활발

다양한 문화

동남아에서 치안과 정치 경제가 안정한 나라

MM2H는 은퇴비자로

주거 차량 구입 세금 감면 등 혜택 많아

필리핀, 인도네시아보다 비싸지만

치안과 영어 소통이 잘 됨.

 


MM2H의 한계와 변용

조기 유학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는

유학을 위한 최적의 국가

비용과 거리 면에서

영국, 미국, 호주 = 말레이시아 1/3 수준

말레이시아 대학에서 영국, 호주로

3+1 유학 또는 말레이시아 내서 있어도

영국 호주 학위 취득 가능

말레이시아 정부도 유학생 적극 유치

말레이시아 내 2009년 8만명 유학생(Tham et al. 2013)

 


기러기의 어려움

- 초창기 부모없이 온 보딩스쿨 학생들

일부 학생들의 일탈이나

가족간의 적응 문제 발생


환율에 따른 주거비용 차이

조기유학 비용과 효용에 대한 기회비용

- 말레이시아에서 몽골로 이주

- 조기유학에서 대학 어학연수로 변화


은퇴자로서 한계

- 영주권이 아닌 체류자 신분으로 다시 한국 귀국

- 한인 커뮤니티가 역사가 짧을 수 밖에 없어

- 현지 정보는 에이전트나 종교시설에서 얻음

 


4장

초국가 시대의 재마 한인 사회와 한인 정체성

 

조기유학에 대한 설명은 계속된다.

 

조기유학 대상지 말레이시아

암팡, 몽키아라 한인타운

학교, 편의시설, 주거 집약지

영어, 힌디어, 타밀어, 중국어(호키엔, 광둥어, 하카, 만다린)

2008년 10월 통계청
2007년 초중고 유학생 통계 자료

1위 미국
2위 동남아
3위 중국

말레이시아 영어의 한계? 특수성?
맹글리쉬
엄마들의 말레이식 영어에 대한 불만과 우려
부모의 영어에 대한 억눌린 욕망
625 멘탈리티 = 냉소주의 = 최악의 시나리오 준비

초국가적 가족

 


5장

한인 사회와 한인 정체성의 변화 : 암팡에서 몽키아라로

 


6장

'빗장 공동체'로 인식되는 한인 사회
: 한인과 현지인 간 상호 작용의 특징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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