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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재외학교 지원관련

[파견준비]재외학교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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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공식이 있다고 믿는가?
개인적으로 방법론에 열중하는 것보다
성취하고자 하는 것의 필요한 요소에 집중해서
내가 당장할 수 있는 내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가장 좋은 승리 공식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도전으로 아래 과정을 해냈다.


임용고시합격-전국 현장연구대회 입상-텝스 6할 넘기-재외 한국학교 교육부 선발파견
아쉽게도 현실은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쌓인 노력들에 운이 더해진 결과
요즘은 효율성과 빠름을 추구하기에
결과가 빨리 도출되지 않으면 쉽게들 포기한다.
내 경험상 남들보다 훌륭하다거나
남다른 재주나 꾸준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꿈과 목표가 있었고

목표를 향해 두려움 없이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삶과 교직 생활 중
진정성을 일깨워준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좋은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좋은 전략이 있었다.

먼저 재외 학교 관련 방문 경험이 있었던 대학교 3학년
해외탐방 프로그램에서 파견교사의 꿈은 시작되었다.
뜻밖에 제의를 해준 태우에게
지금 생각해봐도 참 고맙다.
덕분에 이력서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주제는 재외한국학교의 교육과정 실제를
교대생에 입장에서 한국의 실제(2학년 실습경험 토대로)와 비교해보는 것이었는데
당시 전 세계 한국학교에 메일을 보냈었고 북경과 상해에서 연락이 왔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도약할 수 없다' - 스티브 잡스


그 연락을 발판 삼아 계획을 진행했다.
또 그 당시 우리를 관심있게 지켜보며 상세히 답변해주신
당시 상해 국제학교의 84학번 동문선배님이 계셔서
그곳 방문을 목표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또 이 분은 나중에 상해 술자리에서 우연히
고2 담임선생님과 재회를 주선해주신 분이 되기도 한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중국에 갔고
북경과 상해학교를 방문하면서 파견교사라는 제도를 처음 알았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 온다고 들어서
일단 나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아나(?)처럼 그 선생님들이 해준 말들이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상해 학교에서 선배님 덕분에
우연히 고 2 때 담임선생님을 뵈었다.
중국어 선생님으로 계셨고 은사님도 나의 꿈을 응원해주셨다.
작년 말에 말레이시아에 오셨는데 학기 중이라 아는 범위 내서
말레이시아 관광 안내를 카톡으로만 드렸다.
(다음에 오시면 직접 가이드해드려야겠다.)
그 후 임용고시, 군입대, 결혼 후 자녀출산, 내집마련 등
꿈보다는 현실에 급급하게 살았다.
첫 학교에서 나이스, 정보공시, 교무업무보조,
체육 보조, 연구업무보조, 각종 막내 역할 등등을 했다.
선배들이 남자 교사가 하는 업무를 맡지 않는다고 걱정했는데
이미 능력자 선배들이 주요직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셨고
또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나이스 업무와 각 분야 보조업무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갖게 해 준 것 같아 좋다.
그리고 경력란에 쓸 게 많았다.
역시나 단점은
어느 하나 잘하는 게 없고
나의 분야라고 내세울 것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항상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했기에

두 번째 학교에서는
방과 후 업무와 오케스트라 돌봄 업무까지 맡으면서
부장도 처음이라 업무파악과 일처리를 동시에 하느라
일이 몰리는 날은 매일 10시까지(야간 당직근무자 수면 보장 시간)
야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기일 내에 처리해야 하는 것은
첫 차를 타고 학교에 5시 30분에 갔다.
그러다 보니 학교 일을 혼자 다하냐며
아내, 선배 부장님들, 심지어 숙직기사님까지
걱정어린 반응도 있었지만..
지금도 학교 업무할 때 이 시기가
내 의지와 멘탈을 모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정말 힘들었는데 이게 나중에
지원서 및 경력을 쓸 때 큰 자산이 되었다.
시간의 압축 효과랄까?
작은 학교에 있으니 많은 업무를 맡게 되고
힘들었지만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으며
업무도 못하고 시간관리도 못했는데
시간관리의 필요성과 업무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배우게 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얻으려면
시간, 돈 등
나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내주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 중 고민도 많았다.
맡은 업무만으로도 벅찬 부족한 능력과
집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언제까지 이런 반복된 야근을 지속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막연히 좋을 것만 같은 해외 학교로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잠시 현실도피였다.
새로운 곳은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외 한국한교 선발을 알아보았고
붙임 서식 지원서 양식을 작성하려니
연구실적, 어학성적, 한국사 자격증, 7년 교직 경험 등
이룬 것이 하나도 없어
미리 써둘 것도 없었다.
그래서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니
한국사 자격증이었다.
유효기간도 없고
그 당시 업무 외에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의욕도 없을 때였다.


업무와 수업패턴에 익숙해진
중견교사가 되고 있다면
빨리 다른 도전을 찾아보자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교무부장님과 교장선생님이
여행과 다양한 경험에 가치를 두는 분들이라
재외 학교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공문이 오면 제일 먼저 알려주셨다.
이번 지원 때도 이 교무부장님께서 지원해보라고
섬에 있는 나에게 전화까지 해주셨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학교에 있을 때
교무부장님이
"파견에 관심있으면 승진 때도 필요하니 1급말고 3급 준비하셔~"
라는 말에 스스로를 돌아 보니
파견에 관심이 있다고 말만 하고 다녔지
준비해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날 한국사 자격증 책을 샀고
미루다미루다 산 지 1년 뒤에
시작해보자고 다짐하고 한 달 공부하고 3급을 땄다.
당시 파견제도가 있었던
파라과이, 이집트, 이란, 이라크 중
파라과이가 그나마 치안이 나을 것 같아
어학 가산점을 위해 스페인어 책을 샀다.

덕분에 두 번째 학교 선생님들과
교내 스터디도 해보고 게으르고 재능없는 학습자이지만
하나씩 천천히 진행해 나갔다.


모든지 시작이 어렵다.
하나씩 시작하자.
어학이 목표라면 책부터 사자.


그러다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섬학교인 백령도를 가게 되었다.
당시 백령도에 들어가려면 교장선생님께 간곡히 부탁을 해야 하는데
먼저 말을 꺼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승진 생각이 없었음)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필요할 때
꼭 적재적소에 능력자나 은인이 항상 나타나서 도와주신다.
승진점수도 높았지만 그보다 아이들과 함께 섬에 살아본다는 로망과
인천에 근무하면서 섬에 다녀오는 것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승진을 위한 최적화 전략으로
가까운 섬에 갈 수도 있었지만
가까운 섬은 가족들과 함께 섬 생활을 해볼 수 없을 것 같아
인천에서 제일 깊은 섬을 택했다.
그러나 들어가고 나서는 승진제도가 바뀌었고
지금까지도 신규가 가는 섬으로 비인기 지역이 되어 버렸다.
선발되고 나서 교육부 파견 전 연수에서
선발 담당 연구사님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섬학교 근무하시는 분이 지원한 건 드물다고 하시면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주셨다.
파견 후 생각해보니 소규모 학교인 섬학교의 경험과
고립되어 있는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마치 재외학교 환경과 비슷해서
선발자의 관심을 끌기에 매력적인 요소였던 것 같다.


특별한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면
커리어와 진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자


다음 학교인 백령도라는 소규모 학교는
구성원 간 협력을 넘어선 단결을 요구했다.
섬 입출도 순서나 승진을 위해 달리시는 분들이니
서로 점수계산에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을
서로 이해 시켜주시려고
많이 애써주셨다.
그리고 승진과 관련된 대회 노하우도 많이 공유해주셨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어벤저스 같은 분들이 모인 집단이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곳에서 현장연구대회 전문가였던 교감선생님과
연구부장님의 현장연구방법, 수업실기 대회 노하우가 많은 선배들의 대회노하우와 전략
그리고 수업연구와 고민...섬의 밤은 조용하기 그지없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자리마다 늘 아이디어 회의였다
수업실기를 위한 학생 학습 훈련,
지도안 작성 등등 준비 노하우를 배웠다.
그동안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갈증이 많이 해결되었으며
정답은 없었지만 동일한 것은
수업 준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루틴이 되면
수업 준비시간도 차츰 줄어들고
보다 효율적으로 시간 활용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업무 정리하는 방법과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보고 배웠으며,
인간관계와 중견교사의 관점, 관리자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신규 같지 않은 신규 선생님이었던
영양, 특수 선생님의 노련함과 열정 덕분에
스페인어, 오카리나, 우쿨렐레, 요리를 익힐 수 있었다.
물론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은
시간과 정신력,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약간의 공황 증상까지 찾아와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싶었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은 없었고
첫 도전에 전국 현장연구대회 입상이라 좋은 결과도 얻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별 일 아닐 수 있고 천천히 해도 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빨리 한꺼번에 이루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 같다.


귀찮지만 잡다한 모든 것과 매순간에 충실하라.
그러면 그것이 유용한 도구가 된다.
항상 같은 환경에 사는 곤충들이나 최적화를 요구한다.
급변하는 미래사회에서는 카멜레온 같아야 한다.
-타이탄의 도구들 중-


물론,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들여
나만의 성공전략을 계획해야 한다.
그러나 힘들면 잠깐 쉬면 된다.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도 파랑새도 없다.
선발제도를 잠시 이야기하면
그만한 수학능력이나 업무능력이 되는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따라서 특채, 특별전형 등등 운 좋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그만큼의 수행력을 요구한다.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고
준비가 덜 되었으면 준비를 더 하자.
온 힘을 다해서 뛰어 선발되었는데
그 다음은 날아가라고 한다.


'인내도 쓰고 열매도 쓰다.
열매가 이루어졌을
그 환희에 순간만 달다.'
- 교사 서승현 -


그리고 그 전만 해도 승진하는 것은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다른 선후배를 짓밟고 올라가는
아주 나쁜 거라는 인식이 컸는데
열심히 노력하며 서로 돕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았고,
무엇보다 당시 교무부장님이 지금의 나의 교직관을 잡아주신 분이다.
섬 입도 1년 차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을 때
교무부장님과 한 공간을 쓰니
매일 10시까지 야근하시는 교무부장님을
두고 혼자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남아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는데
미안해서인지 성에 안 차시는지 일을 잘 안 맡기셨지만
끝나고 운동장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른 교사들의 입장이나 마음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물론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고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만 아는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생각해보고 전략을 잘 짜서
그냥 하면 다 돼.
너무 걱정 말고 (방향과 전략이)
결정됐으면 그냥 열심히 해."
이 말씀이 도전하고 있던 모든 것..
전국 현장연구대회 3등급,
3주 준비 텝스 6할 넘기,
파견 지원 한 번에 합격
이라는 결과를 얻게 했다.
절실함은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를 주었고
시간의 쫓김은
전략을 만들어냈으며,
지원과정의 두려움은
즐거운 여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떨어져도
될 때까지 도전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라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글재주가 이것밖에 안 되어서..
그리고 합격수기나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을 위해 아는 범위 내서 성의 있는 글로 다시 찾아뵐게요.
텝스 준비과정, 한국사 준비, 자기소개서 작성요령 등등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바빠서 다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 공간인 이 블로그에 마음대로 적어보려 합니다.
저의 합격 과정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도전하는 모든 분들께 많은 도움과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공간은 여행과 제 개인적 공간으로 둘 예정이라
교직에 관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seosam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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